조경복의 자취집 인연
자취방 주인어른의 추임새
2009년 4월 21일 이른 아침 수원역에서 대구역 가는 기차를 탄다.
오랜 가뭄 끝에 곡우(穀雨) 절기에 봄비가 흠뻑 내려 대지가 촉촉하다.
대구 동산 병원 장례식장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내 마음도 봄비에 젖어있다.
30여 년의 조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HRM/D 컨설턴트 일하고 있는 지금이라 일정을 조정하여
낮 시간에 ‘김성곤’선생님의 빈소에 상문을 갈 수 있다.
‘김성곤’선생님은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자취 했던 집의 주인어른이시다.
대구의 다른 학교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그 당시 억제 할 수 없는 젊은 혈기에 나의 자취 방은 대 여섯 명의 친구들로 북적거린다.
때로는 같이 자취하는 고향 동네 형이 몇 달간 있기도 한다.
주인집 입장에서 보면 성가신 일이 기도했을 법한데 늘 ‘경복이는 씩씩한 기상으로 뭔가 한몫 할 거야’라는
긍정적인 추임새 메시지를 주셨다.
사모님 또한 정이 많으신 분이라 그 집에서 이사한 후에 인사차 잠깐 들리면 꼭 찬거리를 챙겨 주신다.
자취방 학생과 주인댁의 평생 이어진 인연이다.
그 뒤 주인댁 맏아들은 나의 고등학교 후배가 되어 지금은 대구의 한 대학교 사무처 과장이 되었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혜숙이는 일가를 이루어 잘 살고,선대 와 삼대는 한창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면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김성곤’ 선생님, 이제 하늘에서 저희들 지켜 보시면서 사모님과 편히 쉬시옵소서.
자취방 학생과 주인댁 아들이 서로서로 안부 전하면서 자녀들 혼사에 왕래하면서
소중한 인연 이어가겠습니다.
( 2009년 4월 22일 오전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