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시인 문 인 수
차들이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연신 치고
달아난다. 비닐봉지는 힘 없이 떴다 가라앉다 하면서
찢어질듯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지만 도통
소리가 없다. 연속으로 들이닥치는 무서운 속력 앞에,
뒤에,두둥실
웬 허공이 저리 너그러운지.
누군가의 발목에서 떨어져나온 그림자, 그늘인것 같다.
과거지사는 더이상 다치지 않는다. 이제
적의 멱살도 박치기도 없는 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또 잔뜩
바람을 삼킨다. 대단한 소화능력이다. 시장통,
거리의 밥통이다. 금세 홀쭉하다.
(문인수 시집 '배꼽',창비시선286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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