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0 목
사학자 이덕일 선생을 만나다.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 문헌적 자료 근거가 없다. 후세에 그 주장을 펴서 이익이
돌아가는 편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서인정권은 노론으로 이어진다.
율곡 이이--사계 김장생--우암 송시열--이완용으로 학문권력이 대물림 됨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식민사학자의 역사관에 밀려나서 우리는 왜곡된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 독립운동가인 이분들은 해박한 한문 역사,문헌 지식으로 무장했다)
일본은 한사군 대동강 유역설 및 조선남부지역 임나일본부설로 조선은 역사적으로 식민지였다고
교묘히 왜곡시켰다.
(漢書,후한서.史記 등을 종합해볼때 한사군의 위치는 평양부근이 아닌,
북경부근의 조선현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식민지 역사 왜곡을 그대로 인용 답습하고 있다.)
노론의 역사관--명나라를 중국대표국가로 인정, 청나라 무시 병자,정묘호란 원인
주자학만 유일한 학문--절대주의
(이에 반해 윤휴는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있다말이냐' 상대주의)
윤휴 사형 당한 이후 학문토론 침묵시대--
노론 -예학/예법의 대가--영조(경종은 태생적으로 남인당적,
숙빈 최씨 연잉군=영조, 노론 힘으로 즉위--노론 입김으로 사도세자 사건 발생
정조 이후 노론의 10여 개 집안이 국정 농단--1910년 8월 이인직(이완용 노론당수비서)을
통감부 외사국장에게 보내 '나라 넘기면 우리에게 어떤 처우 해줄것인가' 물음--
답변-귀족령 만들어 귀족대우, 은사금 약속--
76명 조선인 귀족 작위 수여(왕족12명, 남인 0명, 북인2명,소론6명, 나머지56명이 노론 차지)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의 자손은 가난에 허덕이는 동안 나라 넘긴 귀족작위의 후손은
조선총독부 등에서 학문권력을 계속 잡고있어서 해방 후 70년이 흐른 지금도 일본입장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본 식민사관의 그늘에 있다.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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